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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활동가 인터뷰) 사회를 위한 개인의 움직임을 국가가 막는다면

2018년 9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 최희섭 해설위원이 배드파더스(Bad Fathers)에 76번째로 등록돼 논란에 휘말렸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아빠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다. 최희섭 해설위원은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김유미와 이혼 후 법원으로부터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월 100만 원씩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배드파더스에 등록된 지 한 달여 만에 최 해설위원은 양육비 갈등 조정 기관을 통해 미지급된 양육비를 모두 전달했다고 밝혀 배드파더스 명단에서 삭제됐다.

이후 사회적인 파급력을 가진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자와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돼, 앞으로는 법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하고 그해 10월에 사이트 문을 닫았다. 그런데 법안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자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줄여서 양해들)’로 명칭을 바꿔 4개월 만에 돌아왔다.

2024년까지 배드파더스부터 시작해 양해들에 올라간 양육비 미지급 신상 공개만 3000건, 그들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건은 29건이다. 협박당한 건수는 셀 수조차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인 구본창 활동가를 만났다.

지난 29일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구본창 활동가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김미연)

 

-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게 된 계기가 뭔가요?

첫 시작은 코피노(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보통 버려진 아이를 지칭함)였어요. 20년 넘게 운영한 학원을 그만두고 마흔여덟에 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갔죠. 이곳에 와서 버려진 코피노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처음 왔을 때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 여성과 교제하고 버린 코피노만 3만이 넘었죠. 그런데 코피노맘들은 한국으로 도망친 놈들을 못 잡아요. 대부분 코피노맘들은 빈민가에 살아서 돈이 없거든요. 필리핀 정부는 가난한 코피노에게 관심이 없고요. 한국 정부도 피차일반이죠. 그럼 코피노 양육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은퇴하고 시간 많은 저 같은 사람이 받아내야죠.

 

- 은퇴 후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양육비가 없어서 밥 굶는 코피노들을 보며 분노가 일었어요. 아이들의 생존권은 무엇보다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소명의식 같은 건 아니고,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분노는 양육비 미지급 지원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한국에 있는 코피노 친부들을 찾아가 양육비를 요구하면 대체로 비인간적이고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구본창 활동가는 아이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WLK 단체를 설립하고 인터넷에 코피노 친부 신상을 직접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친부들은 글을 내리라며 수시로 협박해 왔다. 전화로 협박하는 것은 기본이고 건달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때때로 관두고 싶었다. 버려진 코피노 숫자는 날로 증가하는데 코피노의 심각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를 보면 다시 끓어올랐다.

 

“필리핀에 코피노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자피노도 있죠. 근데 코피노와 자피노는 삶 자체가 달라요. 일본 정부는 자피노에게 직접 기술 교육을 지원해요. 교육을 받으면 일본에서 취업도 할 수 있고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부모 중 한 명이 일본인이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도 쉬워요. 게다가 양육비를 못 받는 자피노맘에게 무료 변호사도 지원해 줘요. 코피노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요. 이게 코피노의 현실이죠.”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참담한 현실은 코피노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6년 전 구본창 활동가는 배드파더스 운영진으로부터 활동을 제안 받았고, 국내에도 양육비 지급 미이행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안을 수락한 뒤 코피노와 국내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그의 발은 이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입니다'라는 배드파더스의 슬로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현재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많이 개선됐는지요.

최근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첫 실형이 나왔어요. 미지급자가 양육비 지급을 10년 동안 미뤘는데 고작 징역 3개월이 선고됐습니다. 판결 당시 밀린 양육비가 9600만원이에요. 줄 수 있는 형편인데도 고의로 주지 않았죠. 이게 정말 합당한 형량인지 의문이 듭니다. 실형이 나왔다고 해서 문제가 개선된 게 아니에요. 현재 한국에서 양육비를 못 받는 국내 이혼 가정이 80%, 다문화 이혼 가정은 96%, 미혼모는 92%예요. 여전히 처참한 숫자입니다. 양육비 이행법을 강화하지 않으면 이 수치는 절대로 완화되지 않아요.

 

- 지난 1월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확정판결을 받으셨는데,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법의 유죄 판결, 예상은 했지만 여전히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이 나서서 했는데 죄가 됐으니까요. 출산율을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국가의 아이러니, 분노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