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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길 위의 선택

길을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을 마주칠 때가 있다. 길 앞에 놓인 표지판은 각각 다른 길을 가리킨다. 하나는 ‘가본 길', 다른 하나는 ‘안 가본 길’.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길로 갈지 고민하다 가본 길을 선택한다. 행여 안 가본 길로 갔다 길을 잃을까, 길이 험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런데 이곳, 한국잡지교육원에 ‘안 가본 길’만 가는 사람도 있다. 취재기자 26기 오미라 연수생이다. 오 연수생은 대학 시절부터 전공과 무관한 일들을 해 왔다. 스물 셋부터 다양한 곳에서 일했던 그는 여전히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하다고 한다.

 

- 전공과 관계없는 일들을 하셨다고. 어떤 일을 하셨어요?

카페, 온라인 서점, 전자책 출판사 등 스물 셋부터 여러 곳에서 일했어요. 가장 오래 했던 일은 바리스타예요. 십 년 정도. 원두 수입부터 로스팅까지 웬만한 건 다 해봤어요.

- 십 년이면 오래 하셨는데 그만둘 때 아쉽진 않으셨어요?

오히려 할 만큼 해봐서 아쉬움은 없더라고요. 십 년쯤 되니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요.

-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나요.

바리스타는 후각이 중요해요. 원두의 향미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고객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할 수 있거든요. 근데 저는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커피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계를 느꼈죠.

- 그럼 다른 일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신 거예요?

바리스타를 그만두고 뭘 할까 고민했어요. 때마침 온라인 서점 Y사에서 채용 중이더라고요. 독서가 취미는 아니지만 책에 관심도 있었어요. 회사 위치도 가깝길래 지원했죠. 근데 붙은 거예요. 붙으니까 일단 해 보고 싶어졌어요.

 

길을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을 마주칠 때가 있다. ⓒUnsplash

 

오 연수생은 어떠한 의도로 서점에 입사한 건 아니었다. 붙었으니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서점 일을 하면서 책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책과 관련해 어떤 일이든 시도하고 싶었다. 결국 서점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그는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전자책 출판사였다. 그러나 그는 출판사로 이직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 출판사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가 ‘오디오북 만들기’라니, 약간 당황스러웠을 거 같아요.

오디오북은 상상도 못 했어요. 당연히 전자책을 만들 거라 기대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는데 만들다 보니 의외로 재밌는 거예요. 오디오북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다른 미디어 매체들도 궁금해졌어요. 더 재미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궁금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 다른 미디어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지더라고요. 결국 출판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방송통신대에 들어갔어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인거죠.

- 몇 번의 새로운 도전을 거쳐 다시 대학 생활. 무모하다고 생각하거나 두렵진 않으셨나요?

두렵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그래도 해 보고 후회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안 해보고 후회하면, 그 후회의 잔해들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저는 발부터 나가는 사람이라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데, 딱 하나 못 해본 게 있어요. 워킹홀리데이. 해외에 혼자 나가는 게 무서워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어요. 워홀은 나이 제한이 있거든요.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워홀을 기점으로 ‘내 인생에 안 해보고 후회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다짐했죠.

 

방통대 3학년으로 편입한 그에게 ‘언론사 기자’라는 꿈을 안겨준 새 인물을 만났다. <여론과 미디어> 수업을 강의하던 설진아 교수였다. 설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언론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무렵, 한국잡지교육원에서 취재기자26기 모집 글을 보았다. 글을 제대로 써 본 경험은 없었지만, 그는 속으로 외쳤다. 지금이 기회야!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 대학에서 다시 잡지교육원으로,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네요. 교육원 공부는 어떠신가요?

이전처럼 완전히 새로운 도전은 아니라, 대학 생활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어요. 대학은 미디어에 대해 거시적으로 다룬다면, 교육원은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 같아요. 저처럼 글쓰기 경험이 전무한 사람은 이런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뭐든지 기본기가 중요하니까요.

 

교육원 수료 후 계획을 묻는 말에 그는 서슴없이 답한다. 방통대를 졸업하는 것과 언론사에 취업하는 것.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뿌린 것들을 무사히 수확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어진 마지막 질문. 그는 약간 부끄러운 듯 답을 망설였다.

 

- 커피를 오래 하셨으니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미라 씨를 원두로 비유한다면요?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라는 원두가 있어요. 이름이 좀 생소하죠? 바리스타 사이에서는 신의 커피라고 불릴 만큼 향미가 정말 좋아요. 로스팅 정도에 따라 차(tea)처럼 또는 와인처럼 느껴지는데, 맛의 여운이 짙게 남는 원두예요. 저도 그런 여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보지 않은 길을 여정으로 삼은 사람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길이 험난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 길을 지나오면 이제껏 보지 못한 근사한 풍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길 위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삶의 밑거름이라고 믿는 오미라 연수생을 보니, 자유로운 청춘들의 바이블인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가 떠오른다. 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과 다양한 풍경을 그려낸 이야기. 그리고 그 책에서 떠오르는 한 구절.

‘우리의 찌그러진 여행 가방이 다시 인도 위에 쌓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길은 삶이니까.’